2021년은 작가 정채봉이 짧은 생을 마감한 지 20년이 되는 해이다. 평생 소년의 마음으로 순수를 잃지 않고 살다 2001년 1월 9일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난 정채봉. 샘터사는 정채봉 20주기를 맞아 그의 산문집 네 권(《그대 뒷모습》,《스무 살 어머니》,《눈을 감고 보는 길》,《좋은 예감》) 중 여전히 아름다운 글을 한 권으로 엮어《첫 마음》을 출간했다. ‘성인 동화’라는 새로운 문학 용어를 뿌리내리며 한국 문학사에 깊은 발자취를 남긴 그는, 동화라는 장르적 틀을 넘어 놀라운 창작열로 소설, 시, 에세이 등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동화 작가로서뿐만 아니라 에세이스트로서 손색이 없었던 그의 작품 세계를 이번 산문집을 통해 재조명해보고자 한다. 소설가 조정래는 정채봉을 일컬어 ‘그 누구도 따르기 어렵게 뛰어난 작품을 쓰는 탁월한 작가’이며 그의 문장들을 ‘아름다움을 넘어선 샛별처럼 빛나는 보석’이라고 언급했다. 이외에도 법정 스님, 이해인 수녀, 장영희 교수, 피천득 수필가, 정호승 시인 등 당대 많은 문인과 호흡했다.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세상에 대한 통찰력, 담백하고 간결한 언어로 수많은 독자의 마음을 다독였던 정채봉. 그는 늘 자신이 발견한 삶의 순수를 이야기하고, 자분자분한 걸음걸이와 말투에서는 자신을 낮추는 겸양이 드러났다. 그가 많은 이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은 것은 어쩌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마음이 시리고 답답한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삶의 지혜와 위안을 그의 글에서 구할 수 있지 않을까. “그 누구도 무엇이 옳은지 당신에게 말해 주지 못할 때, 해답도 없고 출구도 없고 길도 보이지 않을 때, 돌아가야 하겠지. 늦기 전에. 처음의 마음으로.”
“해 질 무렵 살구나무 위에 올라가서 노을을 바라보면 왠지 슬퍼져서 눈물을 글썽이며 내다보던 골목길. 고향의 그 골목길이야말로 기다림의 씨앗을, 그리움의 씨앗을, 아득함의 씨앗을 내 여백의 마음에 파종시켰던 첫 작물 밭이라고 나는 말할 수 있다.” (16쪽)
그의 작품에 일관되게 흐르는 정서가 있다면, ‘애(哀)’일 것이다. 그는 어린 시절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아버지마저 소식이 끊겨 할머니의 손에서 성장했다. 내면으로 침잠하는 조용한 성격, 유년 시절의 결핍으로 그는 자신만의 문학 세계를 조금씩 벼려 냈다. “외로웠던 환경이 오히려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할 수 있게 했고,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한 대신 자연을 관찰하고 벗할 수 있어서 정서적으로 부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사실 내가 쓰는 글의 많은 부분을 어린 시절 기억의 조각에 빚지고 있는 거죠.” (《엄마 품으로 돌아간 동심》 본문 중) 그가 남긴 40여 권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키워드 엄마, 바다, 고향은 그의 언어가 결국 가닿는 창작의 뿌리 같은 것이었다.
읽는 내내 황순원의 소나기를 현실세계에서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작가 정채봉님이 보고, 느끼고, 들은 것을 독자가 그대로 느낄 수 있게 글속에 표현해 놓았다. 누군가 나에게 이야기 하는 것 같다. 잘 살고 있다고…
나는 혹은 우리는 무언가에 집착하고 가질려고 하는 마음이 아마도 남과 비교를 해서 그런거 일텐데. 정채봉 작가님은 아마도 나와는 세상 보는 눈이 달라서 이런 글을 쓸 수 있었으리라.
세월이 지나도 그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스며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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